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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있었던 유명한 사이코패스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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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화군(터뻗)
조선 국왕 선조의 6남 이름은 ‘이보’
그가 오늘날에도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논 이유는
그가 생전에 보여준 악마같은 행적 때문
기록상에 실제로 백성들올 고문하고 쾌락살인하엿논데
명실상부 조선 최압의 왕자 사이코패스 새디스트 연색살인마로
그 어떤 부정적인 수식어클 붙여도 아깝지 않은 인물
그의 일생올 간락하게 살펴보자
1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보이기 시작하다
흔히들 현대 범죄학자들이 말하는 것올 들어보면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범들은 어럿올때 동물이나 곤충올 아무렇지 안
게 학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기록상 순화군은 딱 그 상황에 들어맞는 행각올 보이기 시작함
내선조)가 말하는 것은 피요하-긴 하나; 내가 만약 말하지 양으면 조정이 어펼기 올컷는가 그순화군)의 성기
(#릇는 극히 이상하여 어클 다부터 천성적으로 잔인하엿다 이제 저끗서 서 하늘 일이 모두 ^ 콤들 그려 죽이
논 짓으로 잔혹하기 그지없으니 더욱 괴롭기만 하다: 디로 주색잡-기(루곤적듯)와 갈은 젓어 강파-(도추)한 사
같이라면 그라드 포츠적으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필 떠부터 새나 집승일지라도 반드시 잔인하계 상해시
켜야 만족해 하여다 대체로 이프한 다 -문이_ 조정 다신과 얼굴올 다주하-고 말걀 스가 굶다:
선조실로 선즈 34E(1601) 2럴 10일 317 기사
실제 선조는 순화군이 이전에 동물들올 자주 학대하는 등 천성적으로
잔인한 성품에 대해 걱정올 내비친바 있으며
오죽하면 아버지 선조는 “저럼 바에 차라리 여자나 밝혀으면 좋직다”라
고 햇을 정도
벌써부터 저런 씌수가 누런 짓을 해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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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정신의학이나 사이코패스에 대한 지식이 있올리도 만무햇고
게다가 왕자인지라 누구도 그룹 막을 수는 없없음
2 임진왜관 시기의 막장행감
1592년, 임진왜관 개전 직후 ,
아버지 선조는 순화군과 그의 형인 임해군(얘도 만만참은 쓰레기임)올
강원도로 보내는데
임해군과; 순화군의 임무는 강원도로 가 의병올 지원하는 거워음
그러나 강원도는 이미 함락되어 함경도로 향하는데
1B51
임해군 (선조의 장자)
순화군 (신조의 6남)
(드라마 장비록 중 한 장면: 벌써부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
근데 이놈들이 하라는 의병지원 임무는 안하고
백성들올 학대하고 관리들에게 형포름 부리논 등
형제가 쌍으로 껑판올 치기 시작
참고로 이때 순화군의 나이가 불과 13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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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참다못한 사람들이 반란올 일으켜
순화군과 임해군올 당시 왜군의 수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버림
화장 정정( #1 가로 기요마사}이 목계 (카진트 침입하니
회령(음주) 사람들이 반란올 일으켜 두 광자 (임해군 . 순화군 오; 여러 저신(표로올 잡아
적올 맞아 합복하다다;
이로써 관남 (북 주)Z- 관북(챔름5}이 모두 적에거 항락되없다.
<선조스정실쪽> 26권
선조 25본(1592년 명 만련(`급) 20년) 7월 1일 (무오)
조선 백성 관리가 전쟁중에 반란을 일으켜 조선 왕실의 R출올 적군에
게 넘겨버린 것임
오축하면, 왜군도 백성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임해군과 순화군올 함께
손가락질 햇다는 야사가 있음
국가적 위기때 왕자들이 백성들 규합하여 다같이 왜에 대항해도 모자락 판에
백성들 두들겨 패다가 백성들한데 잡혀서 왜군들한데 그대로 넘겨진게 웃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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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로 감성하다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진 순화군은 1년간 포로로 지내는데
안그래도 시궁창이없던 성격이 더 지락맞아지게 팀
1597년 10대 중반이 되면 해 항해도에 머물때는 무고한 주민들올 집
아 곤장을 때리질 않나
느닷없이 민가에 습격하여 백성한터 갈침올 농질 않나
나중에는 그 증상이 더더욱 약화되어
오직 ‘쾌략’만을 위해 해마다 10명이상의 살인올 저지르는
완벽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로 각성
4 어머니클 모식터 궁녀름 강간하다
순화군이 저렇게 대농고 껑판을 치고다니고
신하들은 그룹 벌주라고 계속 건의하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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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그래도 자기 U줄이라고 끝까지 비호함
그러나 결국 1600년 순화군은 대형사고틀 치논데
바로 의인왕후름 모시면 궁녀름 대낮에 강간하는 짓율 저지름
거기다가 당시 의인왕후가 죽은 직후라 장례흘 지내는 중이엎는데.
즉 어머니의 장례름 치르는 와중 자기 어머니가 모서저 있는 관을 지키
논 궁녀름 강간한 것
이 일만큼은 도저히 실드가 불가능하다고 여젯던 선조는 신하들에게
순화군올 처벌할 것올 지시
순화눈 ( 잡) 이뇨(프로)가 어려서보터 성짚이 피국하여 내 이미 그가 사람 노릇율 못 알 출 알아 마음 속으
로 상상 걱정하엿는다 성장하자 그의 스형은 차다 형언할 스 없없다 앞서 여러 차례다 결켜 살인들 하여으다
보자간의 정의로 C-리가 자식움 위대 숨기거 으페가 의리틀 덮어O 하기 때문어 그즈 나는 한 다직의 말드
지 만고 으사습금)9 조처어 말거두고서 오직 마음올 태우고 부끄러워활 #이없다 그 늘 다 사렇으로 인하-여
다행히 죽온움 면하엿으다 펴학한 컴등은 더욱 기란하는 바가 없없다
오는 반전 #R)의 곁 여학예서 제 어미의 배비교적: 궁네블 검간하하으니 경학물 금합 수 없다. L 차다 입
박에 폐지 못하켓으다 말하-지 안울 수 없다 국가의 지옥고: 거 마음의 침통홀음 어물거 달걀 스 있젊는? 내가
이 자식올 돈 것온 곧 나의 죄로서 군해8다툼 꿀 황퉁이 덮다 다만 내기 치마 직접 경죄(모#)발 수 없으니
유시트 하여금 벌에 의대 처E-하제하락
선조실록 선조 339(1600) 7월 16일 1번쪽
당시 법률에 따르면 당연히 순화군은 사형에 처해야 마땅햇지만
그러나 왕정 국가에서 어떻게 감히 신하가
대농고 왕자루 사형시키자고 나설 수 있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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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하들은 곧장 80대에 유배형올 하자고 건의햇논데
곧장 80대 때린다는 것은 결국 죽이자는 뜻이나 다름 없없기에
그것마저는 용밥할 수 없없던 선조는 결국 순화군올 폐서인 시키고 유
배보내는 것으로 일단락
5 앞배지예서 백성들올 잡아 고문하다
선조는 순화군이 패악질올 부리논 것’ 우려하여 위리안치(집에 감금) 시켜
으나
당연히 집안에 암전히 틀어박혀있올리 없엇고 대문 박차고 나와
유배지 수원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맺판을 치기 시작
그의 악행중 일부름 나열하면
자기 뒷받에 채소가 신선하지 않다고 노비잡아 두들겨 팬
자기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다고 노비 집 불지름
화공(그림그리논 관리) 잡아다가 곧장
여자 계집종의 옷 전부 벗긴다음에 밤새 결박시키논 등 괴롭림
마을 내에 질병이 돌아 곳을 하는 여자 무속인올 잡아다 밤새도록 치
아름 천천히 뽑는 고문올 하고 즐김
위의 악행을 보고받고 겨노한 선조는 다시 순화군올 감금하라는 어명
올 내륙으나
역시 순화군 답게 담을 부수고 나와 백성들올 레이드 도는것 마냥 사냥
하기 시작
결국 선조는 지방에선 도저히 순화군올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한
양으로로 재합송
6 그럼에도 아버지 선조는 그룹 벌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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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5′
(자기자리 지키논데는 능햇지만 참 답답하기 그지없다)
서울로 돌아오고도 여전히 사람 죽이는 버릇 못 고친 순화군은
서울 길거리로 나가 사람들올 죽이고 곤장을 치논 등 행때름 부림
그럼에도 선조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안는 등 답답한 모습만 보임
순i준 이보기: 사활- 로없다
사관의 주석 스표군 이보가 위리조i어서 벗어느 티부터 더욱 훈출- ( 신물) 한 짓물 다구하여 거리률 드나들다
서 사#올 만나면 별크이 로자덧드데 이날다도 드 여안물 죽여 장옥산 독기돌 뿌린 젓이 극드어 달학유으므트
조여퇴표)가 진동하여 줄라지 앞는 사랑이 없있다 그러나 이정 임근은 =-야흐로 공자 (도구 둘돌 기호하기만
하여 갈히 :하는 사람이 덧으면 -만 충혼: = 척물 가능-엿으드로 더란도 갈히 논계하지 못하고 자상들드 갈히
말증-지 듯하-엿다
선조심프 선조 379(1604) 5듭 25일
이놈되면 애비인 선조도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오축하면 사관들도 “우리 왕 노답이다” 라고 각주록 붙여 놓기에 이름
사근의 주석 국법이 이 지경에 이르렉으니 진실로 한심스럽다.
선조실록 선조 379(7604) 10떡 5알 4선째
기사
그 사이코패스 조선 왕자 최후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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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년 이런 개 쓰레기 왕자루 더 이상 하늘도 보고만 있을순 없엎는

순화군은 중풍에 걸려 몸저 눕게독
그러나 왕실에서논 아무런 치료조치틀 치하지 않으며; 사실상 죽게 내
버려둘
결국 1607년 순화군은 28세로 사망크리
절대왕정, 절대권력 아래에서 태어난 자식이 한번 엇나가고
선조 처럼 생각없이 방치하면
얼마나 근 재양을 불러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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