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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의 정신적 뿌리, 야마구치현 하기 방문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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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의 초상화>

요시다 쇼인은 병학 사범(군사학 등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무사들을 교육시키다가

자신이 가르치는 옛 지식으론 서구 열강을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일본의 여러 곳을 돌아다닙니다.

이 때 미국에 밀항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실패하고 이 때문에 유배가 되는데,

이 유배 시기에 숙부의 집에 ‘쇼카손주쿠’라는 조그만 서당을 열고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막부 타도를 주장하다 결국 막부의 탄압으로 사형당합니다.

이 때 친구들과 제자들이 막부에 대한 복수를 맹세하고, 나중에 막부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죠.

위에 언급한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모두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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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손주쿠와 관련된 인물로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적혀있습니다>

하기는 현재 야마구치현의 인구 약 4만명의 소도시로,

도시는 상당히 쇠락한 상태라는게 느껴질 정도이고

일본에서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방문하기 쉬운 곳은 아닙니다.

현재 하기를 방문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신칸센 신야마구치역에서 고속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입니다.

아침 첫 차를 타는 것을 추천하는데, 전날 신야마구치역 근처 토요코인 호텔 같은 곳에 묵는 게 낫습니다.

신야마구치역 북쪽 버스 정류장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약1시간 10분을 이동하면 하기 시가 나옵니다.

배차 간격이 굉장히 넓은 편이라 시간표를 잘 보고 움직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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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키티 신칸센 도색이 된 핑크핑크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기는 한국인 방문자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교통이나 여행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쉬운 편이 아닙니다.

교통 등의 정보는 일본 사이트에서 얻는 것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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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는 하기 시 여러 곳을 거쳐 종착역인‘히가시 하기역’에 도착합니다. >

히가시 하기역은 그냥 시골역입니다.

노선도 다른 지역에서 열차로 하기에 오기 쉽지 않은 로컬선이라 관광객은 기차타고 올 일이 거의 없을겁니다.

하기에서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라 할 수 있는 ‘쇼인 신사’가 히가시 하기역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물론 가까워도 좀 많이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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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주욱 따라 내려가면 쇼인 신사가 있는 곳까지 옵니다>

쇼인 신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요시다 쇼인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로,

요시다 쇼인이 제자를 가르쳤던 쇼카손주쿠의 건물과 요시다 쇼인 기념관, 쇼인 신사가 합쳐져 있는 곳입니다.

2015년 일본이 유네스코에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신청할 때

이 쇼카손주쿠도 함께 묶어서 신청합니다.

한국에선 이 당시 같이 묶였던‘군함도’에서의 강제 징용 논란이 커서크게 주목 받지 못한 곳이지만,

사실 이곳도 유네스코에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으로 신청할만한 가치가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른 산업혁명유산 대부분이 이름 그대로 근대 산업과 관련된 곳들인데 반해,

쇼카손주쿠는 딱히 근대화와 관련이 있는 곳은 아니거든요.

이곳에서 요시다 쇼인에게 배운 제자들이 일본 근대화의 중심축이 되긴 했지만,

실제 쇼카손주쿠의 운영 기간은3년도 될까 말까 짧았고

요시다 쇼인도 근대 교육을 받은 인물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맹자’를 근본으로 하는 전근대적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실제로 요시다 쇼인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내용도 맹자나 유교적 내용들도 꽤 있었구요.

그래서 2015년 산업혁명유산 선정의 배경에는

평소 요시다 쇼인을 사상적 지주로 치켜세웠던 아베 신조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 않았나 개인적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아베 신조는 야마구치현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으로 요시다 쇼인을 자주 언급하기도 했고,

2013년에는 요시다 쇼인에 묘지에 참배하기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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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인 신사는 상당히 잘 정돈되어 관리 중이었습니다>

입구 왼쪽에는 요시다 쇼인의 삶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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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한쪽에 요시다 쇼인의 실물 인형을, 다른 쪽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밀랍인형이 있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한국인이라면 영 기분 좋지 않을 인물들이 맞아줍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말할 필요도 없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육군의 조슈 파벌의 대표로 막후에서 일본 정계를 주무르며

근대 일본의 덴노 신격화와 군국주의화, 일본의 군사적 팽창과 침략 등을 논리를 설계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청일전쟁 때는 조선에 주둔했던 1군의 사령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들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 역시 조선을 침략하고, 북쪽으로는 만주를 빼앗고,

남쪽으로는 대만과 필리핀을 복속하자는 대외 침략론을 내세우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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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념관 안에는 요시다 쇼인의 인생을 실물 인형으로 전시를 했는데,

사실 요시다 쇼인은 제자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축이 아니었으면

동네 서당 훈장 하다가 막부에 반대해서 죽은 사람 정도로 취급될 딱히 업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부분은 일본에서도 꾸준히 지적받아 과대평가된 인물 하면 항상 언급되는 인물이죠.

그래서 기념관도 나름 열심히 꾸며놓긴 했지만 딱히 별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기념관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등장해서 웃음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야마구치현 재상 8인’이라고조슈 출신의 8명의 일본 총리들을 전시해놨습니다.

근데 확실히 라인업이 어떤 의미로는 주옥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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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부터

이토 히로부미(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야마가타 아리토모(청일전쟁 때 조선에 주둔했던 1군 사령관)

가쓰라 타로(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그 가쓰라)

데라우치 마사타케(조선총독부 1대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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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기이치(러일 전쟁 때 만주군 참모, 육군 대장 출신)

기시 노부스케(만주국 경제 책임자, 태평양 전쟁 상공 대신,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재무장과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보수 방류의 시조)

사토 에이사쿠(기시 노부스케의 동생, 재무장 반대와 경제를 우선하는 온건파)

마지막으로 아베 신조(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가 있었습니다.

웃긴 건 사실 야마구치 현 출신의 일본 총리는 9명인데, 그 사람은 빼놓고 전시를 했습니다.

그 인물이 간 나오토, 유일하게 보수 우익 정당 출신이 아닌 인물이죠.

물론 간 나오토는 출신만 야마구치 현 출신이지 본적이나 정계 진출 이후엔 딱히 야마구치와는 관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그럼에도 보통 이런 곳은 숟가락 하나라도 더 얹으려고 하는게 기본인데

(따지고 보면 아베 신조도 도쿄 출신입니다, 기시와 아베 가문이 야마구치 명문가에 본인의 정체성도 야마구치 사람이었지만)

간 나오토만 빼고 ‘야마구치현 재상 8인’이라 한 거, 솔직히 의도가 보인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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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인형인데, 백종원 생각난다고 하면 백종원씨에게 실례일까요>

저 아베 신조 인형을 보고 ‘쇼카손주쿠’가 산업혁명유산이 되는데

아베가 어떤 힘을 썼을지대해나름 추측은 가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니까 그냥 넘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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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로 들어가면 가운데에 쇼카손주쿠 건물이 있습니다.

상당히 작은 건물이고, 건물 안에는 쇼카손주쿠와 관련된 인물들의 그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줄 맨 오른쪽에 우리가 아는 이토 히로부미가 있네요.

이 건물 뒤에 건물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게 쇼카손주쿠의 끝입니다.

다시 한번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엮인 것에 참 의문이 드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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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손주쿠의 오른쪽에는 전시관이 하나 더 있습니다>

두 번째 전시관은 요시다 쇼인이 썼던 글이나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 인물들이 요시다 쇼인에 대해 썼던 글들을 중심으로 전시했는데,

여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고, 일본어 설명 위주로

영어로도 딱히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본인들이 아니면 딱히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여긴 안 들어가도 됩니다.

아까 첫번째 기념관이랑 돈 따로 받는데, 솔직히 이거 전시하고 이정도나 받나 싶습니다.

그것도 전시관 2개니까 두배 내야하는데 합치면 거의 800~900엔 합니다.

여기서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쇼인의 글이 아니라

요시다 쇼인을 존경했던 인물인 ‘도쿠토미 소호’가 요시다 쇼인을 존경해서 남긴 글인데,

이 도쿠토미 소호는 언론인 출신으로 조선의 식민 지배 이후 초기 총독부의 언론 정책의 전반을 설계했었고

당시 일본 기자들조차 당시 조선총독부의 극심한 언론 통제를 비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광수 등의 지식인들을 포섭하면서 조선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하는데 앞장섭니다.

위에 조슈 총리로 언급된 가쓰라 타로 총리의 정치 고문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정책 고문을 하며

군국주의 행보를 하다가 태평양전쟁 패전 후 극동군사재판으로 전범으로 기소될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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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인 신사 맨 구석에 진짜 신사가 나옵니다>

쇼인 신사 규모는 나름 있어 보이더라구요.

일본에서 신 만드는 것이야 흔히 있는 일이다보니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요시다 쇼인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라는 것에도 찝찝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쇼카손주쿠와 조슈 출신 인물들이 도쿄에 ‘조슈 신사’를 세우고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죽은 조슈 출신 인물들을 추모했는데

이 때 가장 먼저 모신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슈 신사’는 이후 1879년 ‘야스쿠니 신사’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쇼인 신사’와 ‘야스쿠니 신사’의 뿌리는 같은 것이죠.

전반적으로 ‘쇼인 신사’, ‘쇼카손주쿠’는 일본 우익의 정신적 뿌리와 민낯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원래 이 동네 출신들이 위에 주욱 적었듯이

한국하고는 악연으로 엮인 경우가 많아서이것을 알고 오면 절대 기분 좋은 곳은 아닙니다.

저 역시 다크 투어리즘 한다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는데

이 글을 쓰고 정리를 하고 보니 기분이 더 더러워지긴 하네요 ㅎㅎㅎ

글이 길어지다보니 이후에 이토 히로부미 별저, 요시다 쇼인 탄생지, 야마가타 아리토모 탄생지 등 이야기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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