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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부장판사가 있었습니다.
(2)관용차가 딸려나왔지만
(3)가족들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4)아이M뉴스
(5)”저는 아버지 관용차에 한번도
(6)타본적이 없습니다.
(7)이 차는 출퇴근할 때 쓰라고 주는 것이라며
(8)단 1미터도 태워주지 않으셨던 것이
(9)저는 답답했습니다”
(10)-그판사의 딸
(11)동네주민이 인사차사온
(12)’델몬트주스’ 2병도
(13)’버럭’ 하고 받지 않았습니다.
(14)“동네 아주머니들이 법얘기를 물어올
(15)때마다 남편은한사코 그런 이야기를
(16)듣지 말라고 했어요.
(17)판사는 개인적으로 법률상담을해선
(18)안된다는거였어요”
(19)그판사의 부인
(20)“그분이 판사였다는 사실을
(21)부음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22)성당사람들 모두 그가판사였다는
(23)사실도, 어떤일을했다는 사실도알지 못하고 있었어요.”
(24)-그판사가 다니던 성당 수녀
(25)10년전 심장마비로
(26)세상을 떠난
(27)한기택 판사이야기입니다.
(28)한기택 판사는
(29)”목숨걸고 재판하는판사”
(30)로 통했습니다.
(31)사건기록을 싸들고 퇴근하고,
(32)출근하기 전까지
(33)읽고 또 읽었습니다.
(34)몸이 망가져도 말입니다.
(35)”내재판때문에 고통받는
(36)사람이 없도록 해달라”고
(37)기도했던 그의 판결은
(38)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39)”가혹행위 때문에
(40)목숨을 끊은 것은
(41)직무수행과 관련이 깊다”
(42)- 2002년 5월,
(43)가혹행위로 자살한 이등병
(44)국가유공자인정
(45)”재벌가결혼 축의금에 대한
(46)증여세부과 정당”
(47)(2004년 4월)
(48)”공직자재산공개 거부하면
(49)사유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50)”황사많은날근무하다
(51)사망한환경미화원, 업무상재해”
(52)(2004년 3월)
(53)”비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가
(54)시각장애인의 ‘생존권’ 보다
(55)우선할수는 없다”
(56)(2004년 9월)
(57)한기택 공개토론회
(58)2015년, 한기택 판사와 함께 판사, 좋은 법원을 토론하다
(59)최근 열린
(60)한기택 판사 10주기추모행사의 주제는
(61)<좋은판사, 좋은 법원>
(62)이었습니다.
(63)(출처: 법조뉴스)
(64)답은故人이
(65)이미 갖고 있었습니다.
(66)”내가 뭐가 되겠다는
(67)생각을 버리는 순간
(68)진정한판사로서의 삶이
(69)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70)내가 목숨걸고
(71)악착같이붙들어야할것은
(72)’그 무엇’이 아니라,
(73)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74)다른 무엇이라
(75)생각합니다.”
(76)-한기택 판사(195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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