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덕이나 좀 알지 일반 사람들은 이런게 민속놀이 라고? 하고 모르는게 대다수
바로 석전(石戰). 짱돌 던지기 마을 vs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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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사극이나 드라마에서 안나와서 일반인들에게 잊혀진…
네 말그대로 짱돌을 사람한테 투척하는 놀이, 엄청나게 인기였다고 합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처럼 마을 VS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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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체육대회 공던지기 처럼 생각하면 안되고 진짜 짱돌
수백명 장정들이 서로 뒤져라 하면서 던졌음. 곳곳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승세타고 상대방 마을가서 집까지 부술정도였다고
실제로 사람 몇몇 죽어나가는건 신경도 안썼다고 함
“1903년 2월경, 석전놀이를 구경하던 운산금광의 미국인 직원 클레어 헤스(Clare W. Hess)는 재미삼아 한 편에 끼어서 다른 편으로 돌 하나를 던졌는데, 하필 다른 편 석전꾼의 머리에 적중, 맞은 석전꾼은 머리가 터저서 뇌가 흘러나와 즉사했다. 클레어 헤스는 죽은 석전꾼의 가족들에게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움에 떨었지만 백성들 생각으로는 원래 석전놀이는 상대편의 사상자를 발생시키려고 돌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작 그거 가지고 문제를 삼은 조선인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외국인이었던 클레어 헤스가, 석전을 구경하다 자기도 한번 돌 던졌는데, 맞은 사람이 머리터져 즉사함,
외국인은 덜덜 떨었지만, 원래 석전은 그런 놀이다 하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음 ㄷㄷㄷ
태종 이방원은 중병에 걸려 누워있다가도 석전이 벌어진다고 하면 헐레벌떡 일어나 구경했다고..
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 ‘상투의 나라’ 중
“내가 조선에 당도한 첫 해 동안에 나는 전통적인 편싸움, 즉 석전을 구경할 흥미롭고 미심쩍은 특권을 누린 적이 있었는데 (중략)
우리는 이내 돌과 던지는 무기가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어느 조선인의 집에 대피하고자 뛰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요리조리 피하기와 되돌아 가기를 반복하고 종종 담벼락 뒤로 우리들 몸을 숨기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길모어 씨(Mr. Gilmore)의 집에 당도하였는데”
길가다 석전에 휘말려 뒤질뻔해서, 담벼락 은폐, 엄폐해서 이동해서 목숨 건짐
석전으로 가장 유명했던 고장은 안동, 김해,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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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시대에 석전으로 가장 유명했던 고장은 안동, 김해, 평양 세곳으로 개중 안동의 석전꾼들은 기록에 이르기를 맨손으로 짱돌을던지는 것도 모자라 아예 작정하고 사람 죽이는 데 쓰는 전쟁용 줄팔매, 그러니까 투석구로 돌을 날렸다고 한다. 숙련자가 쓰는 투석구는 조약돌조차 시속 140km의 속도로 발사해 중갑옷을 입은 상대도 한방에 골절시킬 수 있는 흉악한 물건인 만큼 당연히 전투력이 엄청났다. 안동 석전꾼들은 특히 중무장하여 근접전에 능한 왜인들을 잘 때려잡았는데, 삼포왜란 때 제포에 웅거한 왜구가
애들은 아예 사람죽이는데 쓰는 전쟁용 줄팔매, 슬링으로 돌을 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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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민속놀이였고
영국 프리미어리그 처럼, 전문 석전 프로 리그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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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와중에 놀이와는 별개로 프로스포츠 성격의 석전이 또 따로 있었다. 즉 전용 코트를 정해놓고 그 영역 안에서 정해진 인원끼리투석전을 벌였는데 민첩원딜인 투석꾼과 별개로 몽둥이를 쓰는 근딜과 방패를 쓰는 탱커가 있으며,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진을짜고 기동하는 등 전략적인 요소도 있었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검투경기처럼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고 사람이 실신하거나 죽여나가는 맛까지 있으니 이렇게도 재미진 경기에 관중이 없을 리가 없다. 단 경기에 참가하는 것은 돌던지기와 돌피하기에 능한 전
(2)문 석전꾼이었다.[4] 이 스포츠는 상무적인 요소가 강했던 초창기 조선왕실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태종 이방원은 중병에 걸려 앓아
전용 구장에서
민첩 원딜 투석꾼, 몽둥이 근접딜러, 방패 탱커로 팀을 꾸려서 경기
겁나 인기있었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