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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현대의 감옥
(2)사극에서 묘사하는 감옥
(3)흔히 사극에선 현대랑 비슷한 형태의 감옥을 목조 건물로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의 감옥을 묘사하지만
(4)공주옥 사진
(5)실제 조선시대의 감옥은 높이 3미터 정도의 원형 담장에 둘러싸인 기와건물 2채의 형태였음
(6)이건 사진으로 남은 공주옥 뿐만 아니라 발굴조사한 경주옥, 포항 연일옥에서 마찬가지
(7)남자 감옥과 여자 감옥이 분리되어 있었고 남자감옥의 크기가 좀 더 컸음
(8)남자 감옥과 여자감옥을 나눈 건 세종 때 였는데 유교 관념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였
(9)다만 세종은 여름용 감옥과 겨울용 감옥, 중죄수와 경죄수 감옥도 나누라 했는데 지방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은 거 같다고..
(10)저 것들을 전부 남녀 나눠서 만드려면 고을별로 감옥 건물 대체 몇개를 지어야 할지 모르니 당연한 거 같음
(11)이렇게 죄수의 인권을 신경쓰려고 한건 조선시대 감옥은 현대의 교도소보단 유치장,즉 재판 대기하면서 잠시 머무는 곳이었기 때문임
(12)위리안치 같은 가택연금의 개념은 있었지만 감옥에 갇히는 징역형이란 형벌은 없었음경주옥 같은 경우엔 포항 연일옥보다 2배는 커서 고을의 규모별로 감옥의 크기 차이도컸던 걸로 보임
(13)지푸라기 깔린 감옥 바닥에 갇힌 게 아니라 기와집 실내수감이었으며
(14)집무실과 다르게 옥사와 담장에 기와를 깐 이유는 초가집은 천장을 뚫고 탈출 가능성이 있어서로 추정옥리
(15)수구(水溝, 해자)
(16)옥리 감시초소
(17)(혹은 중죄수용 목사)
(18)남자옥(男子)
(19)옥리 집무소
(20)발굴조사로 밝힌 조선시대 감옥 평면도
(21)발굴조사로 추정한 옥리 집무실
(22)옥 외부에 있는 초가집이 옥리 집무실로 추정
(23)감옥에 있는 친구를 면회하는 조선 말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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