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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
(2)천리 장성 축조(1033-1044)
(3)서희의 외교 담판
(4)양규의 홍화진, 귀주 승리
(5)• 강동 6주
(6)나성 축조
(7)거란의 1차 침입(993)
(8)(1029년 완성)
(9)거란의 2차 침입
(10)거란의 3차 침입
여요 전쟁
고려 – 거란 ( 요 ) 전쟁 이전부터 고려와 송나라는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음
그 와중에 터진 송 – 거란 전쟁에서 거란이 고려로 처들어 온다고 윽박지를 때 이미 원군을 요쳥했지만
자기도 바쁘다며 송나라가 그냥 쌩까버렸고 이후 서희와의 담판을 통해 강동 6주까지 찾아오는 기적을 선보임
물론 강동 6주 교환 대가로 송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이미 송이 고려를 버림패로 쓴 것에 삔또 상했기에 그대로 관계를 끊어버림
하지만 2차 여요 전쟁이 터지기 전에 고려는 이미 거란의 말을 무시하고 용비어천가를 써가며 북송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고
이빨이 없어서 잇몸이 시린 북송은 이를 반기며 거란 몰래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있었음
근데 2차 여요전쟁이 터지고 거란의 40만 러쉬가 들어오자 패닉에 빠진 고려가 북송에 원군을 요청했는데
또 송나라가 거란의 침공을 두려워하며 핑계를 대고 무시
그리고 진짜 나라 망할뻔 했는데 또 기적적으로 승리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음
3차 여요 전쟁 때 또또 고려는 그래도 송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또 거란 몰래 송과의 관계 개선을 하려고 했음
3차 여요 전쟁 전에 또다시 지원을 요청했지만 또다시 송은 거란의 침략을 두려워해서 또다시 핑계를 대며 거절함
이번에는 진짜 망할줄 알았는데 강감찬 장군의 활약으로 또다시 기적적으로 거란을 물리치며 승리함
이게 993년부터 1019년 까지 26년간 이어진 긴 전란이었는데
단 한번도 송이 고려의 지원 요청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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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요 전쟁 다 끝난 후 1037년에 태어난 핏덩이 소동파가 고려 사신들이 거만하기 짝이 없다고 투덜거려도
결국 샷다 마우스해야 했던 이유가 다 있었음
여요 전쟁의 여파로 북송은 고려에 대한 이래저래 컨트롤할 파워를 잃었고
고려는 누구든 처들어오면 최소 반병신 되서 보내주는 깡패국가로 이미지가 바뀌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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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고려천자 만력제님의 대자대비함을 아시겠습니까?
목숨을 건 충정은 진짜로 위험할 때 도와주신 분에게 하는 것이지
깡패들 처들어와서 집을 불태우는데 난 모르겠지만 닥치고 사대하라는 것에게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