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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사랑하는 작품 <주신구라>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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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년 동안 무사들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와서인지, 일본인들은 복수를 하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복수를 다룬 이야기들 중에서 아직까지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바로 주신구라(忠臣蔵)입니다.

주신구라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1701년 3월 14일 아코오번의 성주인 아사노 나가노리는 자신을 모욕하는 관리인 키라 요시히사를 칼로 베어 죽이려다 실패하여 그 죄로 할복자살을 강요당하고 영지를 빼앗기며 가문을 단절당하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오이시 구라노스케를 비롯하여 나가노리의 부하들 47명이 1년 10개월 동안 복수를 하겠다는 뜻을 숨긴 채 틈을 엿보고 있다가 결국 1702년 12월 15일 요시히사의 집을 습격하여 그를 죽이고 목을 잘라 나가노리의 무덤에 바친 후, 에도 막부의 명령에 따라 47명 모두가 할복자살을 하는 것으로 주신구라는 끝을 맺습니다.

이 주신구라는 한국의 흥부전이나 춘향전 같이 일본에서는 세월을 뛰어넘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고전 문학입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사무라이들의 명예와 복수를 핵심 주제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설 삼국지연의가 실제 역사인 중국의 삼국시대 이야기들을 각색한 것처럼, 주신구라 역시 실제 사건을 흥미 위주로 각색하여 역사적 진실을 덮어버렸습니다.

우선 주신구라에서 나가노리는 공명정대하며 자비로운 주군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그가 다스리던 지역인 아코오번의 주민들은 나가노리가 죽고 그의 가문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자 떡을 만들어 나누면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나가노리가 살아생전에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거두었던 탓에 민심을 잃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나가노리는 평소에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서 그와 가까운 부하 몇 명을 제외하면 그리 평판도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나가노리가 에도 막부의 고위 관리인 요시히사를 칼로 죽이려 내리친 것이 그한테서 모욕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저 화를 잘 내는 그의 성격 탓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게다가 나가노리의 부하들 중 대표인 오이시 쿠라노스케가 1년 10개월 동안이나 치밀하게 복수를 꿈꾸면서 요시히사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교토 외곽의 유곽인 이치리키쟈야에서 여자와 술에 빠져 방탕하게 사는 척 했다는 주신구라의 이야기 또한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나가노리가 할복자살을 하자, 오이시는 복수가 아니라 나가노리의 동생인 나가히로를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기 위해 에도 막부에 1만 냥이라는 막대한 돈을 바치며 로비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또한 이치리키쟈야는 그 무렵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시의 로비가 끝내 실패하여 나가히로가 형의 가문을 잇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자, 절망에 빠진 나가노리의 부하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요시히사의 집으로 몰려가 칼부림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오이시가 그런 복수극에 동의하게 된 시점은 요시히사 습격 사건이 벌어지기 고작 3개월 전이었습니다.

1702년 12월 15일 새벽에 요시히사의 저택을 오이시를 비롯한 나가노리의 부하들 47명이 습격했는데, 그 날 오이시가 북의 일종인 진다이코를 쳤다거나 눈이 내렸다는 주신구라의 이야기도 모두 거짓말입니다. 실제 습격에 가담한 나가노리의 부하들은 46명이었고, 그 날에는 진다이코도 없었고 눈도 안 내렸습니다.

또한 주신구라에서 비열하고 음흉한 악역으로 묘사된 키라 요시히사는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의 주민들이 홍수로 고생을 하자, 자신의 돈으로 홍수를 막기 위한 제방을 쌓아줄 만큼 자비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아울러 요시히사가 나가노리더러 자신한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괴롭혔다는 주신구라의 내용도 완전한 엉터리입니다. 요시히사는 궁중의 규칙과 절차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그것을 가르쳐주는 강사였고, 그 가르치는 일에 대한 보답으로 수고비를 정당하게 받아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법으로 금지된 범죄도 아니었으며, 일상적인 관례였습니다.

헌데 그런 요시히사로부터 강의를 받으면서 수고비 즉 강의료를 주지 않은 나가노리야말로 잘못했던 것입니다. 대학교 교수로부터 강의를 들으면서 수강료를 한 푼도 안 주겠다고 하면, 그게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심지어 요시히사는 나가노리의 아코번 사람들한테 소금을 만드는 기술까지 가르쳐 줄 만큼, 동정심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선량한 사람을 완전히 파렴치한 악인으로 만들어 버린 주신구라는 역사왜곡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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