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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주 4·3!
(2)7년 동안 제주에서 벌어진 일
(3)TTimes = 이해진 기자
(4)1948년 4월3일~1954년 9월21일
(5)이 7년7개월 남로당 무장대와 국군·경찰 등
(6)국가권력 사이 무력충돌이 벌어지면서
(7)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8)’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2003)를토대로 재구성해본다.
(9)발단은 3·1절 발포
(10)해방 이후 제주는 실업난과 식량부족으로극도로 피폐했다. 이 와중에 1947년
(11)3·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찰의 말에
(12)어린아이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13)경찰은 무심히 지나갔고 군중들은
(14)돌을 던지며 경찰을 쫓아간다.
(15)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발포해
(16)6명이 사망했다. 이중에는 11살 아이도 있었다.
(17)격분한 주민들은 총파업에 돌입했고
(18)남로당 제주도당이 조직적으로 참가했다.
(19)미군정은 사태파악에 나서 이렇게 분석한다.
(20)”경찰 발포로 도민 반감이 고조된 것을
(21)남로당 제주조직이 선동해 증폭시켰다.
(22)제주도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다.”
(23)서북청년단을 격려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24)’빨갱이 섬’이라는 굴레
(25)이로써 제주는
(26)’빨갱섬’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게 됐다.이
(27)미군정은좌익색한다며 경찰과 우익청년단체인출을
(28)서북청년회 동원해 1년를간2500명구금했다.을
(29)서북청년단은경찰이할 수없는 거친 폭력을 행사했다.
(30)무장대 협력자를 가려내는 심문반
(31)4월3일남로당의 봉기
(32)경찰과 서북청년폭단의고문이 이어지자력과
(33)350여남로당 무장대는 4월3명새벽일
(34)한라산기슭오름마다붉은봉화를올렸다.
(35)’탄항쟁압이면이다’라는구호를 외치며
(36)이들은 경찰지서와서북청년단의 집 습격했다.을을
(37)이남한 단독정들은수립부위한
(38)5.10선거에반대했다.도
(39)1948년5월10일결국제주는 3개 선거구 가운데
(40)2개과반수 미달로 투표가 무효 처리에서됐다
(41)남한에서 유일하게 선거 거부한를지역이된 것이다.
(42)이승만대통11령은월17제주에일
(43)계엄령을 선남포하고진압작전에 나섰다.로당양민 목숨을 잃게들이된 다
(44)이때부터 수많.
(45)▼ 살해된 여성의 주검
(46)특히이승만미군정은 서북청년단 1천명 이상에과
(47)경찰제복을 입 진압작전혀한복판에세우면
(48)제주는 학살의무대됐다가
(49)“(성산포)주정공장창고부근에는
(50)부녀자와여자들을처녀들의비명소끊이지 않았다.리가
(51)서청겁후탈한
(52)고구마를 쑤히히셔대며덕거리기도했다.”
(53)(공성중씨 증<4·3언진상보고서>>
(54)”서북청년단출신이윤도의
(55)학살극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여됐는데
(56)약 80명희이생더 많았다.자가
(57)젖먹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이었다
(58)죽은 엄마 앞에이가칼로 아기를 찔 위 로 치 켜 들아기들이 그때 죽었다.젖먹윤도는바둥대자
(59)러위세를 보였다.며
(60)도평리
(61)그는 인간이 아니다. 며칠간 밥도 못 먹었
(62)(외도서특고치돈 증언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공대원
(63)중산간마을초토화작전
(64)1948년11월 송요찬 9연이상해안선에서대장은
(65)5km들어통행를사람은하는
(66)’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고 포고했다.
(67)초토화 작전른바었다.
(68)포고령전해지지 않은 마을도 있었지만없이 총살했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람도사라졌다면 ‘도피자 가족’이 총살했라며 다.
(69)모두불태우고재판
(70)해내려온 사변마을로
(71)산으로 피신한 제주 아이들
(72)4개마을방화와 총살로 1만여 명이 집단 살상됐다.동월100여안개에서
(73)“억울하고 가슴 아픈 것은 당시 우리 딸 중제일 철 든 것 이 열두 살이 고 ,아래 열 살, 여덟 살, 여섯 살 아기들인데이것들이 무슨 죄를 지었 다 고 죽였 는가?”4.3 진상보고서>>언
(74)그로
(75)(부성방씨 증
(76)성읍리 학살
(77)남로당 무장대도 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했다.토벌대가 돌아오자렌 이 울 려
(78)1949년 1 월13일 성읍저 녁식 준사를 비 갑자기 비상사이했다.토벌대가 비우자 무 장대 쳐들어왔다.리
(79)가
(80)이들은 2시간 머물며 집집마다 들이닥쳤다.량을 놓지 않으면 살해했고 불 을 질렀다.지금도 마을 어귀 이 날 희 생된 38 명
(81)식내
(82)단을
(83)새긴 비석이 있다.
(84)4.3사건은 7년7개월 만인 1954년에서야군과 경찰의 진압으로 마무 리
(85)됐
(86)희생자만 2만5천 명~3만명제주 인구의 10%였다. 10살 이하가 772명,2464명 달했다으로추정된다.
(87)11~20살이에
(88)끝나지 않은 고통, 연좌제
(89)학살은 멈췄지만 고통은 수십 년 계속됐다.
(90)유족 군’빨 ‘폭갱이’ 불리며 숨죽여 살아야 했고도’라연좌제로 공직 에 나갈 수도 없었 다.우 익 단체주민희생자들은부독재시절
(91)반회’국가유공자’로 보훈대상이 됐다.원들은
(92)김김김김문똑똑똑한 병사상성용 홍유안 종 수 청 옥 규 규이이유유전화와 일일
(93)점김
(94)양오동
(95)이수
(96)“70년 시간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이었다.국가권제가의해 처참히 희생력에불타고 인 무권이 너 져 버 린 참혹함 속에서어떻게 견디어 왔는지 말로 형언 할 수 없다.같은 나라였는지 제 주 도민이같은 나라의 국민이었는지 되묻고 싶
(97)부모형됐고
(98)집
(99)과연제주가
(100).”
(101)(양윤경 4.3유족회장, 뉴시스, 2018.03.29)
(102)그래서 노 무 현 전 대 통 령4.3 유족에게 사과하면 이서대통령처음으로으로는말했다게
(103)렇
(104)”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역 사는 있 는 그대 로 밝히 고 정 리 해 합니다.야특 국가권력에 의히해 저질 러 잘진 못은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국가권 력 은 어떠한 경 우 에 도 합법적으로행사되어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야특별히 무겁 게 다뤄져 합니야 다.”
(105)그리고 현직 대통령으로
(106)두 번째로 추념식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107)“70 전 이 곳 제 주에 서 무 고한 양민들이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것을란 알지 못 해 도 도둑 없고,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108)념
(109)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당했습니다.”
(110)어은 떤 세 력도 부정할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 선언합을국가 권 가한 폭력이 력의 진상을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하복하도록 습니다.”4·3의 진실수없는분명한니다.
(111)역사의사실
(112)예회를겠
(113)정 않고 공정의롭지보수든 진 보 어떤 깃든,국민을 위한 것이될 수 없 을 것 입니않다면,하지발이든
(114)다.”
(115)TTimes = 신원빈 디자인기자
(1)윤석열 정부는 다르다더니…대통령도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당대표도 제주 4·3 추념식 불참
(3)입력 2023.04.02. 오후 12:02 ㆍ수정 2023.04.02. 오후 2:43
(4)(1) 가가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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