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발칸 반도 동부, 아나톨리아 반도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유럽의 입구 트라키아
그 트라키아의 동쪽 가장 끝에는 도시 하나가 세워져 있음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로마 (NOVA ROMA)”라는 이름을 붙여 정통적으로 로마 제국 동방의 수도가 된 도시
이 도시는 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름을 붙여 라틴어로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리게 되고
476년 멸망한 서로마 제국의 영역을 뒤로하고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 전까지 제국의 중심지가 됨
5세기 동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 치하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플의 성벽
테오도시우스 2세가 도시를 확장하며 세운 성벽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테오도시우스 삼중 성벽이라고 불리우는 성벽임
성벽의 구조
성벽 앞으로 폭 10m의 넓은 해자를 파고 그 앞으로 삼단으로 성벽을 쌓음
게르만족이 두려워하고 기독교 세계에서는 신의 채찍이라 불리우던 훈족의 아틸라조차
콘스탄티노플까지의 여정에서 수많은 로마 도시를 불태웠지만 테오도시우스 성벽 앞에서 감히 공성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함
2층 3층에서 사격하니까 와! 화력이 2배!
성벽이 3개라 와! 방어력이 3배!
3단 성벽
물론 3단 성벽으로 십키로미터가 넘는 지역을 다 커버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공사라
일부 지역은 절벽 지형을 이용해 1단만 쌓음
현대에도 남아있는 테오도시우스 삼중 성벽의 일부
도시를 둘러싼 바다에도 성벽을 쌓아 혹시 모를 해상으로부터의 침략에도 대비가 됨
도시의 항만
동방과 서방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동로마 제국의 중심지로서 막대한 부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옴
콘스탄티노플 도시 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중앙 광장인 “포룸 콘스탄티누스”
제 4차 십자군 전쟁때 도시가 파괴되면서 같이 파괴되어 지금은 기록으로만 남아있음
중앙 전승기념탑의 동상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모델로 만들었다
콘스탄티노플 전차경주장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운동선수가 로마시대 전차경주 선수일만큼 전차경주는 도시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였음
그만큼 전차 훌리건들도 많았고 콘스탄티노플 폭동은 대부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함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도 전차경주장에서 시작된 폭동으로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적도 있을 정도
콘스탄티노플 건너편에 있는 작은 소도시 갈라타
콘스탄티노플, 금각만 그리고 갈라타
전쟁시에는 이곳에 쇠사슬이 쳐져 배가 지나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함
극장과 바다
바다 너머로 희미하게 아나톨리아 반도의 모습이 보임
이 무렵 극장과 원형경기장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옛 로마의 검투사 경기와 유혈낭자한 신화 연극이 금지되었음
지도 위치상 이곳에는 훗날 하기아 소피아가 건설됨
기독교 교회와 바다
역시 바다 너머로 비티니아 속주의 모습이 보임
이 바다를 건너면 콘스탄티노플 이전 동방 로마제국의 수도인 니코메디아가 있음
테오도시우스 2세의 도시 확장 이전의 콘스탄티노플 성벽과 개발구역
게임에서는 성벽 2개 두면 사기라 철거했지만 실제로는 8세기 지진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제국의 2차 방어선 역할을 수행함
지진으로 무너진 성벽을 복원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수차례 벌어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도시가 단 한차례도 위험했던적이 없기 때문
그만큼 테오도시우스 삼중 성벽은 무적이었음
제국 궁전
기독교의 수호자였던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답게 돔에 십자가가 세워져있음
“새로운 로마” 콘스탄티노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