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형성된것

결혼하지 않는
독신 수행(비구)
전통을 엄격히
지켰다.

달라졌다. 일본은 한국 불교를 일본식으로
바꾸어 통제하기 위해 1911년 사찰령을
공포했다. 이때 일본에서 이미 보편화되었던
‘승려의 결혼과 육식’을 한국 스님들에게도
허용하며 세속화를 유도했다.
대처승(帶妻僧)의 등장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 일본으로 유학 갔던
스님들이 일본 불교의 영향을 받아 결혼하고
귀국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처승)를 몰아내고 전통적인 독신 불교
(비구승)를 되찾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대처승은 일본의
잔재이니 사찰에서 물러나라””는 유시(명령)를
내리면서 비구승 측에 힘을 실어주었다.
결혼한 스님(태고종)

– 머리를 기르는 것도 선택사항
– 아내와 자녀를 두고 가정을 꾸리며 사찰 운영
– 스님이 개인적으로 세운 사찰이 많다.
– 사찰을 자손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세습 가능
(일본 불교의 가업 문화와 닮아 있음)
– 화려한 붉은색(홍가사)을 입는다.

조계종 (독신 비구)

– 결혼하면 스님자격 없음
– 짙은 갈색옷
– 참선을 최우선
계룡산에서 여자랑 돌아다니며
만만한 사람들이게 윽박지르고 다니는
스님을 보았는데 . 스님 답지 못했다.
스님이 오락실에서 담배피고 게임하고
현충원 돌아다니며 유가족들에게 돈뜯고
조상 제사
모두 일본식 불교 영향이었다니.
(우리엄마가 제사비용으로 매년 500을
스님에게 보냄)
씁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