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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이 북한 영토로 귀속될 뻔 한 적이 있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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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연변의 모습. 전형적인 조선 마을 모습이고 조선인들이 대다수입니다.

만주국 설립 후 이곳은 만주국 간도성에 속했고 주민 대다수는 조선인이었습니다. 1945년 간도는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고 소련 군정의 지배를 받는데, 소련에서는 이곳을 북한 영토로 배정하는 방안을 고려합니다.

간도의 조선인들도 대다수가 북한으로의 편입을 지지했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 만주는 수십년간 중국 본토와 역사를 달리 하였던데다, 함경북도와 바로 맞닿은 간도는 조선과 서로 제 나라 드나들듯 오갔기 때문에 조선인의 정체성이 뚜렷했죠.

또 지금처람 남북한이 분단되지 않았고 만주국은 일제의 괴뢰국이었기 때문에 이동도 쉬웠던데다, 일제가 만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심어둔 역사 인식까지 영향을 미쳐 간도 조선인들은 간도가 북한령으로 편입되어야 함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곳은 청나라 말기부터 대한제국과 청나라 간의 오랜 국경분쟁지역이었기 때문에 중화민극 정부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고, 후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섰던 시기에는 공산당이 국공내전 초기부터 이곳을 점유했기 때문에 빠르게 중국 행정권에 편입됩니다. 문서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소련도 결국 이곳을 북한령으로 하는 것은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간도 조선인들의 독립과 북한 편입은 좌절되었지만, 독립운동가인 주덕해의 노력으로 기존 중화민국과 달리 소수민족을 인정하고 자치권을 부여힌 공산당의 정책에 따라 이들은 중국의 민족인 조선족으로 인정받았으며 간도를 연변 조선족 자치주로 만드는 데에 성공합니다.

다만 남북한의 분단과 폐쇄적인 북한의 정책에 따라 오히려 한반도와의 교류는 이전보다 훨씬 감소했죠. 그마저도 남한과는 50년간 단절되어 있다가 한중수교 이후 다시 연결되는데, 이 시기에는 이미 조선족, 북한인, 한국인의 정체성이 매우 달라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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